본문 바로가기
대구 여행

대구 중구·북구·남구·서구·수성구·달서구 이름의 유래와 전설

by 딩굴이 2026. 10. 12.

우리가 매일 부르는 동네 이름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대구의 중구, 북구, 남구, 서구는 도시의 방향과 중심을 나타내는 이름처럼 보이고, 수성구와 달서구는 조금 다른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지명을 자세히 살펴보면 옛 행정구역과 마을의 모습, 오래된 나무와 바위에 얽힌 이야기, 전쟁을 피해 정착한 사람들의 사연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대구는 신라 시대에 달구벌로 불렸으며, 757년에는 대구라는 지명이 등장했습니다. 오랜 시간 행정구역이 바뀌고 도시가 성장하면서 오늘날의 여러 구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의 지명은 단순히 지도에 표시된 이름이 아니라 대구의 역사와 생활문화가 쌓여 만들어진 흔적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구광역시 중구·북구·남구·서구·수성구·달서구의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살펴보고, 각 지역에 전해지는 옛이야기와 전설도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대구광역시 6개 구의 지명 유래와 전설을 소개하는 썸네일. 중구의 옛 대구읍성, 북구의 칠성바위, 남구의 대명동과 안지랑골 이야기, 서구의 당산나무와 옛 마을, 수성구의 역사, 달서구의 월배와 성서 지명을 그림과 함께 표현한 이미지.
대구 중구·북구·남구·서구·수성구·달서구의 이름에 담긴 역사와 전설을 살펴봅니다. 옛 대구읍성과 칠성바위 전설부터 대명동의 유래와 월배·성서의 옛 지명까지, 익숙한 동네 이름 속에 숨은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1. 대구 중구 이름의 유래와 옛 대구읍성 이야기

대구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담은 중구

중구는 이름 그대로 대구 도심의 중심부에 자리한 지역입니다. 오늘날 동성로와 경상감영공원, 근대골목 등 대구의 역사와 상업문화가 집중된 곳이기도 합니다. 중구라는 행정구역 이름은 도시의 중심부라는 위치적 특성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구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옛 대구읍성과 경상감영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 대구는 경상도의 행정 중심지로 성장했고, 1601년에는 경상감영이 설치되었습니다. 경상감영은 경상도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곳으로, 대구가 영남 지역의 중요한 행정 중심지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성곽으로 둘러싸였던 옛 도심

대구읍성은 도시를 보호하는 성곽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흙으로 쌓은 성을 돌로 고쳐 쌓는 등 변화가 있었으며, 1906년에는 읍성의 성벽이 철거되었습니다. 오늘날 도심을 걷다 보면 성곽의 흔적을 직접 알아보기 어려울 수 있지만, 옛 읍성과 관청이 있던 자리를 따라가면 대구 도심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중구는 오래된 행정 중심지와 근대 상업도시의 모습이 함께 남아 있는 곳입니다. 화려한 상점과 번화가만 떠올리기 쉽지만, 그 아래에는 조선 시대 관청과 성곽, 근대 도시의 변화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2. 대구 북구 이름의 유래와 칠성바위 전설

대구 도심의 북쪽에 자리한 북구

북구는 대구 중심부의 북쪽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금호강과 신천 주변의 생활권, 칠성시장, 경북대학교와 엑스코 등 다양한 시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북구라는 이름은 대구의 북쪽 지역이라는 위치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구 칠성동에 전해지는 일곱 개의 바위 이야기

북구의 옛이야기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칠성동의 칠성바위 전설입니다. 북구청 자료에 따르면 칠성동이라는 이름은 선사시대 지석묘인 칠성바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전설에는 조선 정조 때 경상감사 이태영에게 일곱 아들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어느 날 밤 꿈속에서 북두칠성이 빛을 내며 땅으로 떨어졌고, 다음 날 북문 밖으로 나가 보니 일곱 개의 큰 바위가 북두칠성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태영은 이를 좋은 징조로 여겨 일곱 아들의 이름을 바위에 새겼다고 합니다. 이후 바위는 자손의 복과 관련된 장소로 여겨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문헌으로 확인되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입니다. 다만 별자리 모양의 바위와 자손의 번성을 연결한 이야기는 옛사람들이 자연물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보여 줍니다.

오늘날 칠성시장이 있는 칠성동의 이름에도 이러한 옛 지명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익숙한 시장 이름을 다시 바라보면 그곳이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오랜 지역 기억을 간직한 장소라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대구 남구 이름의 유래와 대명동의 사연

도심 남쪽에 자리한 남구

남구는 대구 도심의 남쪽에 자리하며 앞산과 대덕산 일대의 자연환경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주택가와 오래된 골목, 앞산 주변의 산책 공간이 어우러져 대구의 다른 지역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보여 줍니다.

대명동이라는 이름에 담긴 두사충 이야기

남구의 대표적인 지명 이야기로는 대명동의 유래가 있습니다. 남구청 자료에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장수 두사충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두사충은 전쟁이 끝난 뒤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정착했습니다. 처음에는 대구 도심에 거처를 마련했지만, 이후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고 고향인 명나라를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그는 대덕산 아래에 살면서 고국을 생각하는 뜻으로 마을을 대명동이라 부르고, 고국을 향해 예를 올렸다고 전해집니다.

대명동이라는 지명이 두사충의 사연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는 지역의 역사와 인물에 얽힌 전승입니다. 지명의 형성 과정을 살펴볼 때는 이러한 구전 자료와 함께 당시의 문헌 및 역사 기록도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안지랑골에 전해지는 왕건의 전설

남구 앞산의 안지랑골에는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전설에 따르면 후백제 견훤과의 전투에서 패한 왕건이 도망치던 중 기진맥진한 상태로 산기슭에 이르렀고,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신 뒤 기운을 차렸다고 합니다.

다만 남구청의 지명유래 자료는 이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도 함께 전합니다. 왕건이 공산전투에서 패한 뒤 이동한 방향과 전설 속 장소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설은 지역의 기억과 상상력이 더해져 전해지기도 합니다. 사실 여부를 구분해 읽더라도 안지랑골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휴식처로 사랑받았다는 지역의 생활문화는 함께 살펴볼 만합니다.


4. 대구 서구 이름의 유래와 오래된 마을 이야기

대구의 서쪽 지역에서 시작된 서구

서구는 대구 도심의 서쪽에 자리한 지역입니다. 서구라는 행정구역은 대구의 서쪽 지역을 관할하던 서부출장소에서 이어진 명칭입니다. 서구청의 연혁 자료에 따르면 1938년 대구부 서부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63년 구제 실시와 함께 서구로 승격되었습니다.

내당동의 안땅골과 당산나무 이야기

서구의 지명유래에는 내당동과 관련된 옛 마을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전에는 마을에 오래된 소나무 세 그루가 있었고, 이를 당산나무로 불렀다고 합니다. 나무가 있는 곳의 안쪽에 자리한 마을을 안땅골이라고 불렀으며, 마을 사람들은 농사철을 마친 뒤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당산나무는 과거 여러 마을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제를 올렸다는 이야기는 지명이 단순히 지형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생활과 신앙을 담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새방골에 전해지는 집이 날아왔다는 전설

서구 상리동 일대의 옛 마을인 새방골에는 독특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전설에 따르면 달성군 신당리 부근에 살던 부부의 집이 갑작스러운 돌풍에 날아와 지금의 새방골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새로운 집이 생긴 마을이라는 의미로 새방골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집이 바람에 날아왔다는 내용은 전설의 성격을 띱니다. 하지만 옛 지명을 설명할 때는 이처럼 마을의 형성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야기가 함께 전해지기도 합니다.

원대동이라는 이름의 유래

서구 원대동에는 옛날 사람들이 길을 오가며 쉬거나 숙식을 해결하던 원(院)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일대에 큰 원이 있던 터라는 뜻에서 원대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명입니다.

원은 과거 여행자나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이동 중 머물던 시설을 가리킵니다. 지금은 도로와 주거지가 들어선 지역이라도 옛 지명 속에는 교통로와 사람들이 이동하던 방식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5. 대구 수성구 이름의 유래와 수성의 역사

수성구는 옛 수성군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수성구는 다른 구와 달리 단순히 방향만을 나타내는 이름이 아닙니다. 수성구청의 지역유래 자료에 따르면 신라 시대 이 지역은 위화군으로 불렸으며, 경덕왕 때 수창군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이후 고려 초에 수성군으로 바뀌었고,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행정구역이 변화했습니다.

오늘날의 수성구는 이러한 옛 수성이라는 지명과 역사적 연원을 바탕으로 1980년 4월 1일 구가 신설될 때 명명되었습니다.

수성이라는 이름의 한자 표기는 壽城입니다. 한자만 보면 오래 살고 성처럼 굳건하다는 뜻을 떠올릴 수 있지만, 지명은 단어의 뜻만으로 유래를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수성구의 경우에는 옛 수성군과 수성현 등 행정구역의 역사적 흐름을 근거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범어동에 전해지는 붕어 모양의 산 이야기

수성구의 동네 이름 가운데 범어동은 흥미로운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성구청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 이곳에는 범어역이 있었으며, 마을 이름도 범어 또는 역촌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또 다른 전승에는 지금의 범어천주교회가 있는 산의 모양이 입을 벌린 붕어와 같았고, 아래로 냇물이 흘러 마치 물고기가 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뜰 범(泛)과 물고기 어(魚)를 써서 범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지역의 지형을 동물의 모습에 빗대어 이름을 붙였다는 점에서 재미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산과 물의 모양을 자세히 관찰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사물이나 동물에 비유해 마을 이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6. 대구 달서구 이름의 유래와 월배·성서의 옛 지명

달서라는 이름에는 여러 설명이 전해진다

달서구는 대구의 서남쪽에 자리한 지역으로, 월배와 성서, 두류 등 여러 생활권을 포함합니다. 달서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명이 전해집니다.

하나는 달성의 서쪽에 있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대구읍성의 서쪽 문인 달서문과 관련해 대구, 즉 달구벌의 서쪽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설입니다. 지명유래 자료에 여러 설명이 함께 등장하는 만큼 한 가지 설명만을 확정된 정답으로 보기보다는 다양한 유래설이 전해진다는 점을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옛 행정구역의 이름이 남아 있는 월배와 성서

오늘날 달서구를 이루는 지역은 과거 대구부의 달서면과 성서면, 그리고 월배면 등 여러 행정구역에 속해 있었습니다. 지금도 널리 사용되는 월배와 성서라는 이름은 과거의 지역 명칭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사례입니다.

달서구는 1988년 1월 1일 신설되었습니다. 이후 도시가 확장되면서 주거지역과 상업시설, 산업단지가 들어섰고 현재는 대구의 주요 생활권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달서구의 지명에서 읽을 수 있는 옛 풍경

지명은 과거의 자연환경과 마을 모습을 기억하게 해 주는 단서입니다. 지금은 도로와 아파트, 상업시설이 들어선 곳도 예전에는 들판과 마을, 물길이 펼쳐져 있었을 수 있습니다.

달서구의 옛 지명을 살펴보면 도시가 확장되기 전의 행정구역과 생활권이 오늘날의 지역 이름 속에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평소 익숙하게 듣던 월배와 성서라는 이름도 그 역사를 알고 나면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7. 여섯 지역의 이름을 비교해 보면

대구의 여섯 구 이름은 만들어진 배경이 서로 다릅니다. 중구·북구·남구·서구는 도심의 중심과 방향을 나타내는 성격이 강하고, 수성구와 달서구는 옛 행정구역 및 지역 지명과 관련된 역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중구: 대구 도심의 중심부로, 옛 대구읍성과 경상감영의 역사가 이어지는 지역
  • 북구: 대구 북쪽에 자리한 지역으로, 칠성동의 칠성바위 전설이 전해지는 곳
  • 남구: 도심 남쪽의 지역으로, 대명동과 안지랑골에 관한 옛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
  • 서구: 대구 서쪽의 지역으로, 내당동·새방골·원대동 등 옛 마을의 지명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
  • 수성구: 고려 시대 수성군 등 옛 행정구역의 이름을 이어받은 지역
  • 달서구: 달성의 서쪽 또는 달구벌의 서쪽이라는 유래설과 옛 월배·성서 지역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

지명유래는 기록으로 확인되는 역사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따라서 전설을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지 않고, 어떤 이야기가 어떤 지역에서 전해지는지 살펴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8. 지명은 지역의 역사를 기억하는 작은 기록이다

대구의 구 이름을 하나씩 살펴보면 도시의 모습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옛 행정구역의 명칭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기도 하고, 마을의 바위와 나무, 산과 물길에 얽힌 이야기가 지명 속에 남기도 합니다.

중구의 옛 성곽과 관청, 북구 칠성동의 일곱 바위 전설, 남구 대명동의 두사충 이야기, 서구의 당산나무와 옛 마을, 수성구의 수성군 역사, 달서구의 달서 유래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대구의 과거를 보여 줍니다.

우리가 매일 부르는 동네 이름은 단순한 주소가 아닙니다. 그 이름에는 오래전 사람들이 살았던 자리와 자연을 바라본 방식, 마을을 이루며 살아온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다음에 대구의 익숙한 거리를 걸을 때는 그 지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한 번쯤 떠올려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지역 여행이 될 것입니다.


참고한 공식 자료

지명과 전설은 구청 및 대구광역시의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지역 전승으로 소개했으며, 기록으로 확인되는 행정구역 변천과 구분해 서술했습니다.